어린 시절 내 기억에는 가난이라는 필터가 씌워져 있다.
달콤함을 찾아 치약을 빨아먹던 기억.
동생의 분유를 훔쳐 먹었던 기억 같은 것들이다.
가난은 왜 내 삶에 찾아왔을까?
가난하면 강제적으로 최적화를 할 수밖에 없다.
곁가지들은 다 쳐내고 필수적인 것들만 남기게 된다.
나는 그런 삶에 익숙하도록 훈련되었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식.
내가 공부를 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최적화에 익숙한 덕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자연은 이 최적화에 매우 뛰어나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들만이 살아남는다.
나는 가난을 통해 자연의 이치를 배운 것이기도 하다.
부모님으로부터 물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다 받을 수는 없었지만
사랑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가끔씩 받을 수 있는 선물에는 큰 마음이 담겨있었다.
아버지가 시장에서 일하고 돌아오시며 사 오신
곤죽처럼 되어버린 붕어빵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제 느낄 수 있다. 그 마음을.
자연은 물질적으로는 엄격한 최적화를 한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다.
군더더기 없는 이런 방식이 지혜로움이자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물질적으로는 최소한이지만 자연은 동시에 무한한 사랑을 품고 있다.
그 사랑으로 수많은 생명을 품어주고 길러준다.
빛은 굴절하거나 반사하면서도
언제나 가장 짧은 경로로 진행한다.
그러면서 밝음과 따뜻함을 전달해 준다.
나는 빛이 되고 싶다.
이것이 가난이 내 삶에 온 의미이다.
그 의미를 알았으니 이제 더 이상 가난은 필요 없다.
나는 이제 가난에서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