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아빠

배드민턴과 아기 고양이

밝은영혼 2022. 9. 14. 07:25

 

시작은 배드민턴이었다.

추석 전 날, 막내가 심심해하길래,

'같이 배드민턴 칠까?' 했더니 아주 좋아했다.

한 학기 넘게 학교에서 배드민턴을 배웠지만 나랑 배드민턴을 친 건 처음이었다.

저질 체력이던 막내는 갑자기 에너자이저가 됐다.

오전에 마당에서 시작해서 오후에는 골목에 진출했다.

오후에는 피곤해서 나는 쉰다고 하고 엄마를 대신 내보냈다.

 

한참 지난 후 막내가 집에 들어왔는데 셔틀콕 두 개가 지붕에 올라갔다고 했다.

별거 아니지만 막내는 셔틀콕 잃어버린 게 마음에 걸린 것 같았다.

'셔틀콕 찾으러갈까?'

사다리를 들고 집을 나서니, 막내가 아주 신나 했다. 덩달아 나도 신났다.

셔틀콕 한 개는 '서촌 181'이라는 술집 지붕에 올라갔는데 마침 사장님이 나와 계셨다.

사다리 놓고 살펴봐도 되냐고 했더니 위험하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어떻게 할지 기다리고 있는데 사장님이 직접 지붕에 올라가 셔틀콕을 내려주셨다.

따뜻한 마음에 고맙다는 인사를 두 번이나 했다.

다른 셔틀콕 하나는 '부원 빌라'의 현관에 올라가 있었다.

그건 사다리를 놓고 쉽게 꺼낼 수 있었다.

 

셔틀콕을 다 찾은 후 부원빌라 앞에서 배드민턴을 다시 치기 시작했다.

막내가 신이 나서 연신 깔깔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한 번씩 눈길을 주고 갔다.

그러다가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고양이였는데

동네 주민 말로는 어미가 버리고 가서 혼자라고 했다.

혼자 지내서 심심했는지 우리가 배드민턴 치는 걸 재미있어했다.

그러다가 셔틀콕이 고양이 쪽으로 날아갔는데 신이 나서 물고 갔다.

 

이제는 둘째를 불러야 했다.

둘째는 고양이를 참 좋아한다.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이름도 붙여주고 친하게 지낸다.

급히 집으로 달려와서 둘째를 데리고 나갔다. 예상대로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얘 우리가 키워도 돼요?'

데려갈 수 있으면 키워도 된다고 했다.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집에 어찌어찌해서 당근으로 구매한 켄넬이 있었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셔틀콕으로 유인해서 켄넬로 들어가도록 해보기로 했다.

한참의 밀당 끝에 고양이 몸이 반 정도 들어갔다.

내가 얼른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다행히 녀석이 겁을 먹고 도망쳐버리지는 않았지만 날이 어두워졌다.

 

고양이가 처음 나타났을 때를 돌이켜보면

막내와 내가 시끌시끌하게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 즐거운 분위기에 이끌려 스스로 온 것이다.

고양이를 붙잡기로 한 때에는 모두들 숨을 죽이고 다가갔다. 분위기가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고양이는 이런 차이를 우리보다도 잘 느낄 것이다.

우리가 즐겁고 편안하게 있어야 고양이가 다가올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추석이 지나고 다음 날.

이제는 조카까지 합세했다.
처남네는 얼마 전에 고양이를 키우기로 했는데,

한 마리는 금방 죽었고, 그다음에는 그 집 둘째의 비염 때문에 다른 곳으로 보냈다.

즉, 이 조카는 고양이에 대한 경험과 갈증이 있는 아이이다.

우리 둘째와 동갑인데 아침부터 둘이 골목에 나가서 아기 고양이를 찾아다녔다.

 

막내와 나는 고양이 유인책으로 동원되었다.

(둘째) '니가 웃어야 고양이가 오니까 웃으면서 쳐'

(나) '가짜로 웃으면 고양이도 알 고 안 올 거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고양이를 기다렸다.

오후가 지나서야 고양이가 나타났지만 쉽사리 다가오지는 않았다.

 

붙잡는 것은 쉽지 않다.

스스로 다가오게 해야 한다.

아내는 길고양이라서 붙잡아도 우리가 키우기 힘들거라 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 집이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면 머무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가게 하는 게 맞다. 
나가고 싶은데 억지로 머무르게 가두어 둬 봤자 서로 불행할 뿐이다.

가고 싶으면 가고, 있고 싶으면 있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이루어져야 편안하다.

그렇게 되면 내 주변에 진짜 행복한 존재들만 머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