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인데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가만히 누워서 내 내면을 살펴보니 참 여러 가지 것들이 쌓여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내도 깬 것 같아서 안고 누워있었는데 배가 심하게 꼬르륵거려서 일어났다.
평소에는 아침을 안 먹는데 포효하는 배를 달래기 위해서 밥을 먹기로 했다.
뭐랑 먹을까 생각하는데 마침 식탁에 김과 부추전이 있어서 맛있게 먹었다.
아내에게 내 상태를 말할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말하는 게 좋을꺼 같아서 내 상태를 얘기했다.
어제부터 약을 줄이기 시작했고 최근 에너지 레벨이 조금 높아진 상태라고 얘기했다.
아내는 예상한대로 다시 약을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면 다시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거라고 말했다.
잠깐 언성이 높아지고 울컥하기도 했다.
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내 병은 마음에서 비롯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마음을 치료하면서 약은 줄여나가려고 하니 제발 조금만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어진 침묵.
아내가 내 고집에 밀려서 마뜩친 않지만 동의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막내가 게임을 하려면 수학 문제집을 네 쪽씩 풀기로 약속을 했다.
최소공배수 부분을 하고 있었는데 이해가 안 간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는데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그런지 머리가 아프다고 울먹였다.
이때 아내가 옆에 와서 '문제 풀기 싫어서 우는 거야?'라고 했다.
막내는 열심히 하려는데 왜 그렇게 얘기하냐고 억울해하면서 울었다.
울고 싶은 아니 뺨 때린 격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사과하라고 했고 아내가 사과하면서 마무리 됐다.
보통 일요일 오전에 산에 가는데 둘째가 머리를 자르러 가야 해서 오후에 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나가려는데 미세먼지가 매우나쁨으로 나왔다.
밖을 보니 하늘이 약간 뿌연 상태였다.
예보에는 오후에는 점점 괜찮아 진다고 나와서 나가보기로 했다.
보통 둘째는 나가자면 잘 안 따라가는데 홍제천 폭포에 간다고 했더니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넷이서 길을 나섰다.
나무 줄기에 초록물이 올라오고 낙엽 사이에서 조그만 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바람도 적당히 시원하고 봄기운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나들이였다.
막내는 조금만 걸으면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운동이 되게 데리고 나가는 면도 있다.
이번에도 절반 조금 지나면서 언제 도착하냐고 다리 아프다고 계속했다.
겨우 겨우 달래가면서 홍제천 폭포에 도착했는데
잉어와 청둥오리들이 반겨줘서 기분이 좋았다.
막내는 청둥오리를 천둥오리라면서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카페에 들러 음료를 사려고 했는데 비싼 거 같아서 옆에 있는 컴포즈 커피에 갔다.
거기에 자리가 없어서 음료를 받아 들고 다시 폭포 쪽으로 왔다.
폭포 카페에는 자리가 있었는데 외부 음식 반입 금지 표시를 보고 다시 나왔다.
아내는 그냥 있어도 되는데 나온다고 답답해했다.
폭포 앞 야외 자리에 앉아서 사온 와플과 음료를 먹었는데 점점 추워졌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춥긴 했지만 덕분에 공기는 맑았다.
너무 추워서 와플만 먹고 음료를 들고 실내 자리로 옮겼다.
따뜻하니 점점 노곤해졌다.
둘째와 아내는 쌩쌩했는데 막내랑 나는 힘들어했다.
옆에 도서관이 있었는데 둘째와 아내는 도서관에서 더 있고
막내랑 나는 먼저 집에 왔다.
에너지 레벨이 올라가면 삶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삶이 내게 주는 선물들도 더 잘 보인다.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