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적은 용량에도 효과나 부작용이 크게 나타난다.
의사는 일반적인 기준치를 근거로 처방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 기준치에 훨씬 못 미치는 용량에도
효과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을 오랜 기간 경험해서
기준치가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체질의학을 넘어서 유전자에 따른 맞춤 의학을 논하는 시대에
평균을 근거로 처방하는 것은 오히려 비과학적으로 보인다.
약을 처방받으러 가면 나는 부작용이 크니 줄여달라고 하고
의사는 기준치보다 낮으니 이 정도는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누나는 약 용량이 너무 낮으면 조증이 재발할 수 있고 그러면 치매 위험이 높아진다는 주장을 한다.
나는 약을 복용하지 않은 경우가 예후가 더 좋았고 오히려 약 복용이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에 대해 알고 있다.
누나는 내가 상식에 반하는 예외에 해당하는 것을 사실처럼 주장해서 대화가 안 된다고 한다.
나는 상식을 깨고 새로운 발견을 이루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나는 예외에 집중한다.
조울증에 대한 서양의학의 상식이라는 것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원인은 모르고 치료법도 모르고 그냥 증상을 누르는 약 몇 개를 발견했을 뿐이다.
나는 그래서 그들에 상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누나는 안전을 추구하는 것 같다. 기존의 틀 안에서만 안전하다고 느끼고
그렇기 때문에 예외는 안전을 깨는 위협으로 느끼는 것이다.
누나는 내가 가설을 사실로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누나 역시 오래된 가설을 사실로 믿고 있을 뿐이다.
누나와의 대화는 천동설이 상식이던 시절에 지동설을 믿는 사람이 천동설을 믿는 사람과 얘기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누나가 말을 하면 일부러 끊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