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아빠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밝은영혼 2020. 2. 14. 12:33

나때는(ㅋㅋ) 대학교 갈 때 수능과 본고사를 치렀습니다.

수능은 고등학교 내내 점수가 잘 나오는 편이었고 본고사도 할만했습니다.

그 결과 수능은 전국 10등, 전라북도 1등이었고 원하던 물리학과에도 합격했습니다.

당시에는 학부제가 처음 도입되어서 정확히는 자연과학부에 입학한 것이었고 3학년 때 물리학과에 갔습니다.

대학 입학할 때 성적이 좋아서 장학금을 받는 게 제 계획이었는데 장학생 명단에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아직도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은 편이라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과외 아르바이트 벌이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입학할 때 첫 등록금만 부모님께서 내주시고 그 이후로는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은 필요 없었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자유가 주어졌는데 이게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동아리를 정해서 친구들도 많이 만들고 재밌는 일도 많아 보였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냥 고등학교 친구들이 많이 있는 동아리에 들었습니다.

대학생활에서 제가 재밌게 할 수 있던 건 컴퓨터였습니다.

 

2학년 때 제가 과외해서 번 돈으로 제 맘에 들게 컴퓨터를 조립했습니다.

그때는 한창 인터넷이라는 게 보급되던 때였는데 서울대 기숙사에서는 1인당 한 대씩 전화가 있어서 그걸로 인터넷을 할 수 있었습니다. 추억의 모뎀 소리를 내면서 인터넷에 접속되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할 때면 제 전화는 받을 수가 없는 게 정상인데 기숙사 전화에 착신 전환 기능이 있어서 룸메이트 전화로 돌려놓으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제 룸메이트들은 방에 잘 안 들어와서 거의 혼자 원하는 만큼 인터넷을 쓸 수 있었습니다.

2학년 때는 기숙사 친구 무리도 생겼습니다. 앞방에 살던 형이랑 내 동갑, 그리고 과학고 1년 후배, 그리고 공군 장교 형이었습니다. 서로 마음이 잘 맞아서 기숙사에서 밤에 라면도 끓여먹고, 치킨도 시켜먹고, 설악산 여행도 같이 다녀왔습니다.

기숙사에서는 축제도 했었는데 저한테는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닙니다. 기숙사 휴게실에서 여자 25 대 남자 26으로 단체 미팅을 했었습니다. 뭐 운이 억세게 좋은 거라고 해야 될지 저는 최후의 1인이 되었습니다.ㅋㅋ

 

2학년 겨울 방학에는 스키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스키처럼 돈 많이 드는 놀이는 해볼 기회조차 없었는데 좋은 학교에 들어가니 저렴하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키 수업 신청하는 날 학교 강당 앞에 줄을 섰습니다. 인기 과목이라서 줄이 많이 길었습니다. 저는 물리학과 친구 재규랑 같이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형이 재규 한데 와서 말을 걸다가 슬쩍 새치기를 해서 우리 무리에 끼었습니다. 그 형 이름은 박인혁입니다. 스키는 숙박하면서 듣기 때문에 여섯 명씩 조를 짰는데, 그 조에 인혁이형과 재규도 같이 들어갔습니다.

인혁이형은 재규랑 같이 레크리에이션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함께 노는 게 참 재미있었습니다. 저녁에는 방팅도 했는데 내 과학고 후배인 소영이가 있는 방의 친구들과 했습니다. 인혁이형 덕분에 맛있는 과일소주도 마시고, 재밌는 게임도 하고, 모두들 즐거웠습니다. 이때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이 멤버들은 아직도 만납니다. 모임 이름은 '스키 모임'인데 그 뒤로 스키를 다 같이 탄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처음에 자연과학부에 들어갔었고 3학년 때 과를 정했습니다. 원하는 과를 써내고 성적순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물리학과를 썼고 당연히도 물리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학부 1세대라서 선배들을 3학년이 되어서야 만났습니다. 그래서 선배들이랑 처음부터 친하게 지내지 못한 게 좀 아쉬웠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잘 된 일입이다.

3학년 전공수업 중에 전산물리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저는 물리랑 프로그래밍이랑 둘 다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과목에서 저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였습니다.

담당 교수님은 연세가 많으신 편이었는데도 열정적으로 최신 언어를 가르치셔서 놀라웠습니다. 그 최신 언어가 지금도 핸드폰 앱 만드는 데 쓰이는 자바(Java) 언어입니다.

저는 자바가 너무 재미있어서 스스로 테트리스도 만들어 보고 당구 게임도 만들어 보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산물리 과제가 나오면 그냥 제가 해오던 것처럼 재밌게 하나 만들어내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교수님은 '강군'이라고 하면서 제 작품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칭찬받으면 신이 나서 더욱 잘하게 되었습니다.

자바 언어가 훗날 어떤 기적을 제게 가져다주었는지 생각하면 놀랍기만 합니다.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자바를 비롯한 프로그래밍의 역할이 아주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