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의 기다림 뒤에 한의대에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마냥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학교 과목들은 거의 다 암기였는데 이걸 싫어한 한 친구는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지요.
저는 꾸역꾸역 외우기는 했지만 내가 뭐하나 싶었습니다.
저는 외우는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핵심적인 규칙만 잘 알고 있으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모든 상황에 대해서 다 알 수 있으니까요. 마치 물리학처럼.
한의학은 물리학처럼 공부할 수 없는 것일까?
이게 바로 지금의 제가 있게 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였습니다.
교수님들도 뭔가 이상하고 한의학 책들도 뭔가 빈 틈이 많아 보였지요.
이런 어정쩡한 상황에서 대충 점수가 나올 정도만 공부를 하고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한 것 치고는 상황이 괜찮아서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학년을 보내고 2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 태극권을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배우기 전에 누나가 먼저 태극권을 배웠는데 왠지 멋있어 보였습니다.
저도 누나가 배우던 태극권 도장에 전화를 해봤습니다.
마침 겨울방학이라 1달짜리 대학생 대상 특강이 있다고 해서 등록했습니다.
해보니 태극권은 제가 생각하던 대로 뭔가 신기한 비밀이 있었습니다.
별거 아닌 거 같은 동작을 하는데도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거나 어지러워서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태극권에서 배운 중요한 교훈 하나가 있는데
강한 힘에 맞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강한 힘에 맞서려면 그만큼의 반대되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힘들고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맞서기보다는 외부의 힘을 따라가다가 방향만 살짝 틀어주는 것이 더 쉽지요.
고수들은 이렇게 살짝 방향을 틀다가 원래의 강한 힘 쪽으로 두배로 불려서 되돌려 주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정말 통쾌합니다.
이런 기술은 태극권뿐만 아니라 생활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는데 적응하기까지 쉽지는 않더라고요.
막내가 참 울음이 많은 편이었는데, 예전에는 울려고 시작할 때 '울지 마!'하고 윽박질렀죠.
하지만 요즘에는 '울고 싶은 만큼만 울고 멈추기'라고 합니다. 후자가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