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아빠

빼곡한 하루

밝은영혼 2022. 10. 9. 06:35

콩이의 불안한 외출

콩이는 길에서 살던 아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오고 나서 몇 주 동안 집안에만 갇혀 지냈다.

밖에 많이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문을 열어 놓으면 방충망에 코를 대고 바람 냄새를 맡곤 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마루에 함께 나가봤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마당으로 내려가서 풀을 뜯어먹었다.

마당 곳곳을 한참 둘러보더니 스스로 집안으로 들어왔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아내가 두 번째로 내보냈을 때 사건이 생겼다.

옥상 계단에 다른 길고양이들이 마당으로 오지 못하게 막은 문이 있는데

콩이가 그 창살 틈으로 나가버렸다.

옥상으로 올라가더니 지붕까지 올라갔다.

'그래, 너는 원래 그렇게 살았지.'

콩이를 보내줘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콩이는 걱정이 안 됐는데 둘째가 걱정이었다.

둘째는 눈 뜨자마자 콩이가 나갔다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옥상으로 갔다.

좋아하는 장난감과 간식으로 한참을 달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또 콩이가 또르륵 집으로 스스로 들어왔다.

콩이와 이별할까 봐 불안하기도 했지만

우리 집을 콩이가 스스로 선택해서 좋기도 했다.

 

마스크 줄 만들기

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교회를 고쳐서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해 놓은 '금오재'라는 곳이 있다.

예전에 거기서 막내가 비즈로 마스크 줄 만들기를 했었다.

또 하러 가고 싶다고 얼마 전부터 얘기했었다.

오늘은 아내가 일이 있어서 집에 없었다.

결국 내가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그 많은 구슬을 다 꿰는 동안 옆에서 기다리는 게 지루하다.

막내한테 가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더니 울기 시작했다.

그럴 때 나는 '속상한 만큼 울어'하고 얘기한다.

울음이 그치고 나서 다시 얘기했다.

"아빠가 널 따라갈 수는 있는데 그럼 아빠가 거기 가서 '집에 가고 싶은데'하고 울 수도 있어."

다행히 마음이 전달이 됐다.

그러고 나니 나도 조금은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막내랑 함께 금오재에 가봤다.

막상 가보니 마스크 줄 만들기를 할 것 같지는 않고 물어볼 데도 마땅치 않았다.

막내가 먼저 '이제 안 하나 봐요'하고 말했다.

만들기 재료를 파는지 다이소에 가봤는데 없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온라인으로 주문을 해줬다.

예전 같으면 '남자 녀석이 무슨 구슬 꿰기야'하고 못마땅해했을 텐데,

지금은 좋아하는 것을 잘 얘기하면 저절로 도와주고 싶다.

 

송현동

어제저녁에 송현동 부지를 개방하면서 음악회를 했다.

가보고 싶었지만 아내가 저녁 약속이 있어서 못 가봤다.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오늘 낮에 다시 가봤다.

애들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첫째는 바쁘고 나머지 둘은 낮잠 자느라 못 갔다.

인왕산이 잘 보일 것을 기대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인왕산 뷰는 별로였다.

너른 잔디밭이 있고 주변에 꽃을 많이 심어놓았다.

꽃 속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꽃 속에서 사진 찍는 것은 어떤 심리 일지 잠깐 궁금해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경복궁 마당을 지나서 왔다.

인왕산 뷰는 역시 궁궐이 최고다.

 

강령탈춤

고궁박물관 앞을 지나다 보니 탈춤 공연을 한다고 쓰여있어서 가봤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공연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남자 여섯 명이서 의상을 입고 동선을 맞추고 있었다.

요즘 같이 흥밋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탈춤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봤다.

그들의 표정을 봤는데 참 즐거워 보였다.

보는 나도 가슴이 뭉클할 정도였다.

동선을 다 짜고 나더니 팔을 위로 올리면서 뛰어오르는 동작을 했다.

그 짧은 동작이 마치 날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보이면서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모든 공연을 통틀어 그 모습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불꽃놀이

몇 년 만에 여의도 불꽃축제를 다시 시작했다.

첫째는 친구들과 인왕산에서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불꽃놀이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보여주고 싶었다.

여의도에 가면 좋긴 하겠지만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도 아내와 함께 둘째, 셋째를 데리고 인왕산으로 갔다.

저녁에 가족들과 산을 오르는 건 처음이었다.

막내는 캄캄해서 귀신 나올 것 같다고 무서워하긴 했지만

색다른 경험이어서 나는 좋았다.

정상까지 오르고 싶었지만 아이들이랑 같이 가는 건 좀 무리라서

성곽이 있는 중턱에서 멈췄다.

다행히 불꽃놀이가 잘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여기가 정상보다 더 가깝게 잘 보이네'하며 말했으니 꽤 좋은 자리였음이 분명하다.

불꽃놀이는 한 시간 넘게 했는데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올해는 일본, 이탈리아, 한국 팀이 했다.

마지막 우리나라 팀이 제일 예뻤다.

'이런 것도 우리나라가 제일 잘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왕산 야경

불꽃놀이도 있었지만 오늘따라 달빛도 밝고 공기도 맑아서 야경이 정말 예뻤다.

집에서 보면 밤에 인왕산의 성곽에 조명이 켜져 있는 게 보인다.

전부터 저길 밤에 갈 수 있는 건지, 그냥 보기 좋으라고 해놓은 건지 궁금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먼저 가라고 하고 혼자서 정상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달이 보름에 가까웠기 때문에 생각보다 환하게 잘 보였다.

중간중간 헤드랜턴을 한 사람들이 지나갔는데 

그 불빛이 지날 때면 오히려 잘 안 보였다.

어둠이 무서워서 헤드랜턴을 한 사람들은 불을 켜면 잘 보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야는 딱 헤드랜턴이 비춰주는 만큼이다.

달빛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올라가다가 첫째를 만났다.

짧게 인사하고 지나쳤다.

반가워도 친구들과 함께 있는 사춘기 딸내미를 오래 붙잡고 있으면 싫어한다.

 

인왕산 정상에서 보는 야경은 참 아름다웠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 역시 다른 세상에 발을 들인 느낌이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각에 인왕산 정상에 있는 내가 참 좋았다.

 

내려오는 길에는 사람이 줄어들어서 한동안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밤 중에 홀로 걷는 모습.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많이 무섭지 않았다. 조금 쓸쓸하기는 했다.

'아내랑 손 잡고 같이 걸으면 더 좋겠다.'

내려오는 내내 달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첫째와 친구들

집에 왔는데 나보다도 먼저 내려간 첫째는 집에 아직 안 와 있었다.

전화를 할까 하는데 첫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애들 우리 집에서 같이 자도 돼요?'

아내가 괜찮다고 해서 나도 해보자고 했다.

첫째가 신난 모습으로 집에 왔다.

집에 고양이가 있다고 했더니 친구들 눈이 커졌다고 한다.

어떻게 친구들 데려올 생각을 했냐고 물어봤더니 '될 것도 같아서'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말도 못 꺼낼 일이었지만

내가 바뀌고 나서는 우리 집에서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첫째도 그런 변화를 받아들인 것 같아서 참 흐뭇했다.

첫째로 태어나면 사랑을 독차지하는 장점이 있지만

부모와 함께 시행착오를 같이 겪어야 하는 단점도 있다.

과거의 나는 답답하고 고지식했고 그 가장 큰 피해자가 첫째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첫째가 친구들을 데려오니 그 미안함이 조금 풀렸다.

 

새벽

지금은 새벽 6시 반.

일찍 일어나서 어제 있던 일들을 글로 적었다.

이제 조금 졸리다.

모두 잘 자고 있고 콩이만 잠깐 왔다 갔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조금 두렵기도 하다.

아버지 생신으로 가족들을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