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으로 마련한 집은 경희대 근처의 아파트였습니다.
면적 자체가 좁은 것은 아니었지만 옛날 아파트라서 방이 두 개뿐이고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셋이나 되고 짐도 많아져서 이사할 시점이 다가왔습니다.
아내는 전에 경복궁 옆에 있는 문화재 보호재단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그 동네가 청량리보다 공기가 좋다면서 나중에 그 동네에서 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산 밑에서 사는 게 좋았습니다.
어릴 때 전주에서는 완산칠봉 아래,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는 미륵산 아래,
대학교 기숙사에서는 관악산 아래.
산 밑에 살면 가고 싶을 때 손 쉽게 산에 올라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청량리 살 때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북한산이나 인왕산에 찾아갔습니다.
아내와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합쳐보니 자연스럽게 경복궁 근처 동네가 목표로 정해졌습니다.
저희 형편에 경복궁 근처로 이사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죠.
그런데 그 꿈 같은 이야기가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한의대를 졸업하고 쉬고 있을 때 취미 삼아 북한산에 오르곤 했습니다.
산 중턱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펀토리에서 같이 일했던 정우와 일규가 한 번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또 같이 일해보자는 얘기이겠거니 했는데,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억대 연봉을 줄테니 같이 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한의원 개원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괜찮은 기회인 것 같아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경매 쪽에 관심이 있어서 여기저기 집들을 보러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우리 집이 매물로 나온 것을 발견했죠.
구불구불 골목을 지나서 골목 끝에 큰 감나무가 있는 집의 옆집입니다.
지은 지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보다는 나이가 더 많은 한옥입니다.
집주인이 해외에 나가 있어서 동생인 부동산 중개인이 맡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집을 보러 들어가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별채 쪽 옥상에 올라갔는데 북악산이 보이는 전망이었습니다.
'그래 이거야!'
더 재보지도 않고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사실은 우리 가족 말고 다른 한 팀이 집을 보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제가 거기서 바로 안 사면 그 사람이 사버릴 것 같아서 얼른 계약하기로 했죠.
그렇게 해서 우리 집 계약은 했지만 진짜로 우리 집이 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