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아빠

귀뚜라미

밝은영혼 2022. 9. 6. 03:08

요즘 집안에 귀뚜라미가 많이 보인다.

올해 유독 마당에 귀뚜라미가 많긴 하다.

들어올만한 구멍은 막는다고 막았는데 어디로 들어오는지 참 신기하다.

 

예전에는 집 안에 벌레가 있으면 최대한 곱게 잡아서 마당으로 내보냈다.

모든 생명은 귀하다고 배웠으니까.

 

그러다가 어느 봄에 생각이 바뀌었다.

봄에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파리들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러면 좋던 기분이 다시 안 좋아진다. 파리들을 잡아 죽이기로 했다.

동네에 있는 통인시장에 가보면 파리가 길 가운데만 날아다니고 가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

가게에 함부로 접근하는 겁 없고 감 없는 파리는 점점 죽어서 도태되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도 감 없는 파리들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효과가 있든 없든 간에 집안에 있는 벌레들을 죽이는 데 죄책감은 줄어들었다.

 

요즘에는 집안에 벌레가 있으면 살려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내 마음대로다.

조금 전에도 귀뚜라미 한 마리를 살려줬다.

그냥 둘까 생각도 했는데, 가족들이 보면 놀라니까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손으로 감싸서 잡으려고 했더니 이 녀석이 놀라서 툭툭 뛰어다녔다.

더 이상 도망갈 수 없게 손으로 빈틈없이 감싸고 나서야 손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마당으로 돌아갔다.

 

나도 저 귀뚜라미 같았다.

어떤 손길이 나를 살기 좋은 곳으로 보내주려 했다.

그런데 그 손길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내가 있던 곳이 내 자리라고 생각해서 그 손길을 피하느라 바빴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게 되어서야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지금 나는 살기 좋은 곳으로 와있다.

그렇다고 여기가 딱히 새로운 곳도 아니다.

원래 내가 있던 곳이다.

차이가 있다면, 내가 얼마나 엉뚱한 곳에 가려고 애썼는지 이제 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노래 부른다. 마당의 저 귀뚜라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