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아빠 118

광화문광장에서

아침에 출근하다가 광화문 광장에서 잠깐씩 앉아 있다가 가곤 한다. 오늘은 한 가족을 봤다. 2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와 부모 그리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였다. 아빠는 외국인이었다. 머물러 있다가 가려는 참이었다. 다른 가족들은 짐을 챙기는데 아빠는 아이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 노래에 아이가 들썩들썩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예전에는 다문화 가정을 보면 문화 차이 때문에 서로 적응하기 힘들거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나 보다는 훨씬 쉬울 것 같다. 일단 외모부터 다르면 나랑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깔고 가기 때문에 조금 이해 안 되거나 낯선 말이나 행동을 해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비슷하게 생긴 외모에 비슷한 생각을 하며 수십 년 같이 지낸 사람이 갑자기 다른 생각을..

다둥이아빠 2022.10.14

머리 어깨 무릎

머리 어깨 무릎 발 자지 보지 얼마 전 이효리가 '질은 코나 손과 같은 것'이라는 말을 했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자지, 보지는 머리, 어깨, 무릎, 발과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쓰지 않아서 낯설 뿐이다. 그냥 낯설고 말면 괜찮은데 여러 부작용이 있다. 존나 > 좆나 > 좆 > 자지 까지 거슬러 가 볼 수 있다. 자지라는 말을 제대로 모르니 존나라는 말도 거부감 없이 마구 쓴다. 여자애들이 존나라는 말을 달고 있으면 화들짝 놀란다. '자지가 나면 너네 남자 되는데' 무식한 남자애들은 방송에서 '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불편하다는 좆같은 소리를 한다. 주변에서 욕을 덜 듣고 싶으면 자지, 보지, 씹부터 뭔지 가르쳐야 된다.

다둥이아빠 2022.10.13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

이곳에서는 음식을 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래서 음식을 사고파는 것은 불법이다. 합법적으로 음식을 먹으려면 성인이 되어서 결혼을 한 후 집에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해 먹어야 한다. 불법으로 음식을 사고팔기는 하지만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은 아주 수치스러운 일이다. 밖에서 음식을 판다는 것도, 밖에서 음식을 사 먹었다는 것도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이야기다. 인터넷에서 먹방을 보려면 성인 인증이 필요하다. 유료 회원일수록 더 자극적인 먹방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비만이 없는 아름다운 나라이다. ---------- 아침에 아내가 신문을 보다가 '코로나 19 완화로 군인들의 성매매가 급증했다'는 기사 얘기를 했다. 식욕과 성욕, 그게 그렇게 많이 다를까?

다둥이아빠 2022.10.12

고양이 낚시

휴일에는 보통 늦잠을 자기 때문에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 인기척이 나자 콩이가 쪼르르 와서 인사를 한다. 콩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밥주고 똥 치워주는 사람이다. 콩이의 호감을 사기 위해 화장실을 정리하고 사료를 줬다. 거실에 앉아 있으니 놀아달라고 깨문다. 고양이 낚싯대로 하는 놀이를 좋아하지만 내가 놀아주면 별로 재미있어하지 않는다. 내가 재미없기 때문에 콩이도 그걸 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전략을 써봤다. 콩이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했다. 콩이가 움직이면 나도 움직이고 콩이가 숨죽이고 있으면 나도 숨죽이고 있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흥미진진한 놀이가 되었다. 움직임은 없지만 콩이와 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면서 무술 대결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콩이도 재미있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

다둥이아빠 2022.10.10

빼곡한 하루

콩이의 불안한 외출 콩이는 길에서 살던 아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오고 나서 몇 주 동안 집안에만 갇혀 지냈다. 밖에 많이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문을 열어 놓으면 방충망에 코를 대고 바람 냄새를 맡곤 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마루에 함께 나가봤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마당으로 내려가서 풀을 뜯어먹었다. 마당 곳곳을 한참 둘러보더니 스스로 집안으로 들어왔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아내가 두 번째로 내보냈을 때 사건이 생겼다. 옥상 계단에 다른 길고양이들이 마당으로 오지 못하게 막은 문이 있는데 콩이가 그 창살 틈으로 나가버렸다. 옥상으로 올라가더니 지붕까지 올라갔다. '그래, 너는 원래 그렇게 살았지.' 콩이를 보내줘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콩이는 걱정이 안 됐는데 둘째가 걱정이었다. 둘째는..

다둥이아빠 2022.10.09

귀가 간지러워요

막내가 아침을 먹다가 귀가 간지럽다고 했다. ---------- 어떻게 하면 좋을까? 1. 귀를 긁는다. 2. 귀를 씻는다. 3. 귀를 판다. 4. 귀를 없앤다. 귀 긁을래요. '귀를 없앤다' 웃겨 ㅎㅎ '귀를 없앤다' 웃기지? 그런데 의사들이 진짜로 그래. 몸이 아프면 아픈 데를 없애버려. 없앤다고 물어보기는 해요? (여기서 아내랑 나는 빵 터졌다. 어리기만 한 것 같은 막내가 이런 핵심적인 질문을 해서 재미있었다.) 응. 물어보기는 해. 그럼 안 한다고 하고 다른 좋은 병원을 찾아가야겠네. 그렇지. 그런데 좋은 병원이 많지 않더라고. 어떻게 고치는지 몰라서 그냥 없애버려. ---------- 순수한 눈으로 보면 세상에 말도 안 되게 웃긴 일들이 많다.

다둥이아빠 2022.10.03

폭풍우

한 차례 폭풍우가 지나갔다. 처남네 식구가 집에 왔다. 콩이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친척들이 오는 건 처음이라 긴장이 되었다. 처남네도 애가 셋이다. 첫째는 우리 둘째랑 동갑인 딸이다. 둘이서 콩이를 잡으려고 함께 쫓아다녔었다. 그런 콩이가 집에 왔으니 엄청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 집에 와서 하룻밤 잤다. 나머지 둘은 아들이다. 우리 막내와 달리 워낙 활동적인 애들이라서 집에 오면 떠들썩하다. 무슨 사고를 치진 않을까 긴장했지만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 위험한 행동을 해서 조금 혼내기는 했다. 마음을 보면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아이일 뿐인데 겉모습만 보면 말 안 듣는 말썽쟁이이다.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다. 처남네 첫째와 우리 둘째가 콩이를 데리고 장난을 쳤다. 다리를 벌린 ..

다둥이아빠 2022.10.02

다둥이 아빠 개발자

나는 다둥이 아빠다. 일단 아이들이 셋이다. 이제는 고양이도 하나 추가다. 자식 같은 내 프로그램들도 있다. 나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만든다. 예쁘게 만들고 싶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프로그램에서도 나를 느낄 수 있다.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코드를 볼 수 있다. 회사에서 그런 자식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입사 이후 줄곧 다른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을 고치는 일만 했다. 아무리 예뻐해주려고 해도 근본 자체가 이상해서 고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처음부터 새로 만들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 창작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일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대표가 수년간의 경험을 담아서 엑셀로 만든 프로..

다둥이아빠 2022.09.26

아기 고양이 콩이

콩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사흘째다. 처음에는 별채 방구석에만 있었는데 오늘은 방 가운데로 나왔다. 그리고 저녁에는 거실까지 진출했다. 낚시 장난감을 사주었더니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다. 먹기도 잘하고 싸기도 잘하고 잘 놀고. 콩이는 적응 완료다. 문제는 우리 가족이다. 콩이가 거실로 나오자, 약한 콧물부터 심한 가려움까지 다양한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아토피가 있던 막내는 콩이랑 신나게 놀고 나서 가려움이 아주 심했다. 다행히 잠이 들기는 했는데 앞으로 어찌될 지 잘 모르겠다. 콩이와의 의사소통도 문제다. 콩이는 나름 표현을 잘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아직 잘 못 알아듣는다. 한참을 울어대서 밥을 줬더니 허겁지겁 잘 먹었다. 밥 달라고 계속 얘기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 겨우 사람과의 의사소..

다둥이아빠 2022.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