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아빠 115

서촌 한옥

신혼집으로 마련한 집은 경희대 근처의 아파트였습니다. 면적 자체가 좁은 것은 아니었지만 옛날 아파트라서 방이 두 개뿐이고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셋이나 되고 짐도 많아져서 이사할 시점이 다가왔습니다. 아내는 전에 경복궁 옆에 있는 문화재 보호재단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그 동네가 청량리보다 공기가 좋다면서 나중에 그 동네에서 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산 밑에서 사는 게 좋았습니다. 어릴 때 전주에서는 완산칠봉 아래,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는 미륵산 아래, 대학교 기숙사에서는 관악산 아래. 산 밑에 살면 가고 싶을 때 손 쉽게 산에 올라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청량리 살 때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북한산이나 인왕산에 찾아갔습니다. 아내와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합쳐보니 자연스럽게 경복궁 근처 동네가 목표..

다둥이아빠 2020.02.17

3의 완성

예전부터 '아이를 몇이나 낳게 될까?'하고 생각해보면 3이란 숫자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집도 삼 남매, 처가도 삼 남매이기 때문일듯합니다. 첫째가 3살 되던 해에 둘째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누나, 남동생이랑 3살 터울인데 적당한 나이차 같습니다. 아이들도 3살 터울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신기하게 아이들도 3살 터울 맞춰서 나오더군요. 첫째는 워낙 미모가 출중해서 조리원에서 부터 화제였는데 둘째는 상대적으로 미모는 언니만 못하지만 특유의 귀여움이 있는 매력덩어리입니다. 첫째, 둘째는 서로 쿵짝이 잘 맞아서 둘이 아주 잘 놀았습니다. 그래서 하나 키울 때 보다는 훨씬 덜 힘들었습니다. 둘째를 보면서 태교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때는 아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둘째 때는 ..

다둥이아빠 2020.02.17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몇 년의 기다림 뒤에 한의대에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마냥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학교 과목들은 거의 다 암기였는데 이걸 싫어한 한 친구는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지요. 저는 꾸역꾸역 외우기는 했지만 내가 뭐하나 싶었습니다. 저는 외우는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핵심적인 규칙만 잘 알고 있으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모든 상황에 대해서 다 알 수 있으니까요. 마치 물리학처럼. 한의학은 물리학처럼 공부할 수 없는 것일까? 이게 바로 지금의 제가 있게 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였습니다. 교수님들도 뭔가 이상하고 한의학 책들도 뭔가 빈 틈이 많아 보였지요. 이런 어정쩡한 상황에서 대충 점수가 나올 정도만 공부를 하고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한 것 치고는 상황이 괜찮아서 장학금..

다둥이아빠 2020.02.15

펀토리

2003년 말에 수능을 마치고 정우란 친구가 보자고 했습니다. 예전에 게임빌에서 같이 일한 기획자 친구인데 일을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와 함께 회사를 만들었는데 같이 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회사 이름이 펀토리(Funtory)입니다. 일단 제가 한의대 입시 준비라는 사실을 알리고 시험 볼 때쯤에는 시간을 내주기로 해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펀토리는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당시에는 모바일 게임 플랫폼이 여러 개 있었는데 SK-VM, Brew, WIPI 등등이 있었습니다. 하나를 만들어서 여기에 각각 맞게 수정을 하는 것입니다. 게임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데 좋은 친구들이랑 같이 하니 더 좋았습니다. 나중에는 게임빌에서 같이 일했던 일규라는 후배도 합류했습니다. 드래..

다둥이아빠 2020.02.15

쉬는 시간

회사를 나올 무렵에는 몸도 많이 안 좋았습니다. 쉬면서 일단 몸을 추스르려고 운동을 하려고 했습니다. 병역특례는 4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했기 때문에 2학기 복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접영 수업도 신청을 했습니다. 그동안 자유형 하면서 접영이 참 멋져 보였는데 드디어 배우게 된 것입니다. 힘들기는 하지만 접영 배우는 것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보통 복학생은 외톨이가 되기 쉬운데 저는 다행히도 제 제일 친한 친구 재규랑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함께 듣는 수업 중에 유체역학이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저는 재미있어 보였는데 재규는 별로 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고맙게 함께 수업을 들어줬습니다. 재규는 이렇게 배려심이 많은 친구입니다. 마지막 학기이기 때문에 진로를 정해야 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대학..

다둥이아빠 2020.02.14

병역특례2 - 게임빌

앞에서 말한 인혁이 형의 친구가 게임 벤처회사를 차렸다고 했습니다. 병력특례 자리도 있다고 해서 인혁이 형 친구를 만나봤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지금 게임빌 사장인 송병준 형입니다. 게임빌은 서울대 동아리에서 시작한 회사라서 서울대 생들이 많았고 다들 젊고 활기찼습니다. 게다가 위치도 제가 살던 낙성대랑 가까웠습니다. 옮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번째 병역특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세기말을 거친 2000년 일입니다. 이전 회사에서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난리 날 거라며 Check2000이란 프로그램을 팔았었는데 아무 일도 없이 2000년을 맞았습니다. 게임빌에는 저보다 한 살 어린 병도라는 친구가 개발팀장으로 있었습니다. 실력은 있었는데 생활이 불규칙해서 회사랑은 잘 안 맞아 보였습니다. 저는 제..

다둥이아빠 2020.02.14

병역특례

대학교 4학년이 되면서 다들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군대 가기는 싫었고 프로그래밍을 좋아해서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따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했습니다. 어느 날 무슨 기자라는 사람이 제 홈페이지를 보고 연락을 해왔는데 자기 아는 사람이 리눅스 회사를 차린다고 거기 지원해 보라고 했습니다. 얼떨결에 따라갔다가 거기에 취직을 해버렸습니다. 옥수역에 있는 '텔레포스'라는 회사였습니다. 당시에는 'DSI'였던 것 같네요. 출근해보니 회사가 아주 개판이었습니다. 사장이 서울대 출신이라고 했는데 아는 인맥 동원해서 이것저것 하는 보따리상이었습니다. 99년도 말 밀레니엄 버그 이슈가 있을 때 그걸 확인해준다는 프로그램을 팔았습니다. 아는 사람이 KAIST 어디서 반도체 기술이 있는데 그것도 한다고 했습니다..

다둥이아빠 2020.02.14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나때는(ㅋㅋ) 대학교 갈 때 수능과 본고사를 치렀습니다. 수능은 고등학교 내내 점수가 잘 나오는 편이었고 본고사도 할만했습니다. 그 결과 수능은 전국 10등, 전라북도 1등이었고 원하던 물리학과에도 합격했습니다. 당시에는 학부제가 처음 도입되어서 정확히는 자연과학부에 입학한 것이었고 3학년 때 물리학과에 갔습니다. 대학 입학할 때 성적이 좋아서 장학금을 받는 게 제 계획이었는데 장학생 명단에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아직도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은 편이라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과외 아르바이트 벌이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입학할 때 첫 등록금만 부모님께서 내주시고 그 이후로는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은 필요 없었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자유가 주어졌는..

다둥이아빠 2020.02.14

전북과학고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정부에서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 전국에 과학고를 몇 개 만들었습니다. 제가 살 던 곳은 전주인데 전주에서 조금 떨어진 미륵사지가 있는 곳에 전북과학고를 만들었습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작은 학교에 3기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학년이 입학하면서 학교가 완성된 것입니다. 한 학년에 60명씩 세 학년인데 3학년은 30명 정도였습니다. 2학년을 마치고 반 정도는 카이스트에 입학하기 때문입니다. 입학 전에는 1월 한 달간 사전교육을 합니다. 전주에서 학교가 멀기 때문에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물리 경시대회를 1등 하는 바람에 물리올림피아드 겨울 캠프에 가게 되었습니다. 물리 캠프가 끝나고 학교에 와 보니 다른 친구들은 벌써 많이들 친해져 있었습니다. 중학교 동창들..

다둥이아빠 2020.02.14

학교에서

학교는 확실히 제 체질이었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 학생들은 자리에 앉고 학부모들은 뒤에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자기소개할 사람 있냐고 물어봤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손을 번쩍 들고 나가서 제 이름을 말하고 '송아지'동요도 불렸습니다. 그 순간 제가 참 대견했습니다. 엄마도 참 좋아하셨습니다. 공부를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아도 이상하게 학교 성적은 아주 좋았습니다. 방바닥 한쪽에 엎드려서 숙제만 해가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제가 아주 범생이라서 숙제는 꼭 해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 선생들은 숙제 안 하면 때리기도 했는데 맞는 게 무서워서였을 수도 있겠네요. 4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습니다. 마치 아들처럼. 언젠가 시험에서 전부다 100점을 맞은 ..

다둥이아빠 2020.02.14